'싸구려 달러'가 몰려온다

강남규 2012. 9. 2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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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교재인 『맨큐의 경제학』을 쓴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강의 도중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인간이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아는가?"

 "…."

 강의실엔 정적이 흘렀다. 맨큐 교수는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이라고 말했다. 뜻밖의 답에 많은 학생이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빙긋 웃으면서 "인쇄기 발명이 없었다면 인간은 돈을 많이 찍어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인쇄기가 요즘 미국·유로존·일본·영국에서 풀 가동 중이다. 이들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QE) 탓이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달마다 400억 달러를 새로 찍어 공급하기로 13일 결정했다. 언제까지 달러를 풀지 밝히지 않았다. FRB 한 관계자는 "실업률이 6% 선에 이를 때까지 달러 찍어내기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실상 무제한이나 다름없다.

프레데릭 너브랜드 HSBC 자산배분 글로벌 책임자는 "미국이 찍어낸 '싸구려 달러'가 한국 등 이머징 마켓으로 몰려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FRB보다 일주일 전인 이달 6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국가채무 위기국 국채 매입을 선언했다. 여러 선제 조건이 달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국채 매입이 조만간 시작될 것으로 거의 확신하고 있다. 머빈 킹 영국은행(BOE) 총재는 올 들어 계속 양적 완화를 시행하고 있다. 유럽 전체가 값싼(금리가 낮은) 돈으로 가득 찰 기세다.

 시라카와 마사아키 일본은행 총재도 기존 70조 엔인 자산매입 기금을 80조 엔으로 10조 엔 늘리기로 19일 결정했다. 일본판 양적 완화다. 그가 기금을 늘리기는 올 4월 27일 이후 처음이다. 이날 결정으로 일본은행의 장기국채 매입 규모는 29조 엔에서 34조 엔으로, 단기국채 매입 규모는 9조5000억 엔에서 14조5000억 엔으로 각각 5조 엔 늘어난다.

 한국의 주요 교역 대상 가운데 중국을 빼고 모두가 또다시 돈 찍기에 나선 모양새다. 아니 한국이 양적 완화국에 의해 포위될 듯하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른바 '싸구려 돈(Cheap Money)'은 국내 거시경제와 자산시장에서 어떤 회오리를 일으킬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서울에 온 HSBC 프레데릭 너브랜드 자산배분(Asset Allocation) 글로벌 책임자를 인터뷰했다. 그는 경제와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예측해 HSBC의 부자 고객들이 맡긴 돈을 어디에 얼마나 투자할지를 결정하는 인물이다.

●미국이 QE3를 결정했다.

 "어린이에게 롤리팝(막대사탕)을 잔뜩 안긴 것과 비슷하다. 시장이 일시적으로 에너지에 충만할 듯하다."

●장기적인 효과는 없다는 얘긴가.

 "심리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실물경제를 성장으로 이끌거나 일자리 사정을 좋게 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왜 그럴까.

 "현재 미국인들은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때 QE 등으로 돈을 풀어도 그걸 가져다 쓸 사람이 많지 않다. 개인이나 기업은 QE 덕분에 이자가 낮아진 자금을 빌려 기존 부채를 상환한다. 돈 값이 싸진다고 투자나 소비가 늘지 않는다는 얘기다. 요즘 버냉키의 금융통화정책이 잘 먹히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미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으면 한국은 손해 아닐까.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요즘 미국 개인과 기업은 자국 내 투자에 인색하다. 이머징 마켓 등 해외 투자가 미국 내보다 2.4배 이상 많다."

●버냉키가 찍어낸 달러가 신흥국으로 흘러든다는 얘긴가.

 "중국이나 한국, 브라질에 투자할 기회가 더 많아 그럴 수밖에 없다. 이머징 마켓에 더 많은 성장 기회가 있고 거품의 후유증 같은 것도 없다."

 버냉키 별명은 '헬리콥터 벤'이다. 그가 학자 시절에 "금융위기나 침체 순간에 헬기로 돈을 투하해 시장에 자금 홍수를 일으키면 된다"고 강조해서다. 너브랜드의 주장대로라면 버냉키 돈 풀기는 부작용 정도가 아니라 역작용(Adverse Effect)을 일으킨다.

●QE3가 역작용을 일으키는 경로를 좀 자세히 알고 싶다.

 "미국이 찍어낸 달러가 이머징 마켓으로 더 많이 흘러들어 신흥국 임금과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미국 수입물가 상승을 의미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 반면 미국 임금 수준은 정체를 면키 어렵다. 미국인의 실질임금이 떨어지는 것이다."

●미국인의 소비가 줄어들 것이란 얘긴가.

 "그렇다. 미국 경제성장의 주 엔진은 소비다. 실질임금 하락으로 소비가 줄면 그만큼 성장이 둔화한다. 돈을 찍어내 풀면 자산가격이 오르고 소비가 늘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깨질 수밖에 없다."

 싸구려 자금이 신흥국에 몰려들면 자산 시장에선 무슨 일이 생길지가 궁금해졌다. 이는 자산배분을 결정하는 너브랜드가 가장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분야다.

●값싼 돈의 이동은 전형적인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이지 않는가.

 "맞다. 이번엔 엔 캐리뿐 아니라 달러·유로·파운드 캐리가 급격히 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과거 엔 캐리와 다를 것이다."

●무슨 말인가.

 "엔 캐리는 상대적 고수익을 좇는 자금이동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캐리트레이딩은 국가 재정이 조금이라도 건실한 나라를 향해 움직인다. 한국 등 아시아 신흥국이 대표적인 예다."

 캐리트레이딩은 건전한 자금 흐름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핫머니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애초 기대한 매력이 없으면 순식간에 빠져 나간다. 그러면 금융시장 요동 등 만만찮은 역풍이 분다. 전문가들이 캐리 자금의 역류에 신경을 곤두세운 까닭이다.

●달러·유로·파운드 캐리는 한국 등에서 어떤 자산을 타깃으로 삼을까.

 "채권시장이 1차 목표다. 특히 재정 상태가 좋은 나라의 국채에 많이 투자될 것이다."

●상품시장엔 가지 않을까.

 "모든 상품이 QE 덕분에 값이 오르진 않을 것이다. 금 등 몇몇 상품만이 가격이 오른다. 금의 가장 좋은 친구는 돈 찍어 내기다. 금이 가장 좋은 친구를 만났으니 값이 뛸 것이다."

●원유나 구리 등은 어떨까.

 "이른바 산업용 상품(원자재)은 돈의 양보다는 중국 등 신흥국 수요에 더 민감하다. 현재 중국·인도 경제가 둔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원유를 조금 보유하고 있다. 중동지역 지정학적 갈등에 대비(헤지)하기 위해서다."

●곡물엔 투자하지 않았는가.

 "우린 곡물엔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최근 미국 가뭄 등으로 값이 너무 올랐다."

 너브랜드는 미래 경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침체나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등이 일어날 가능성을 확률로 따져 본 뒤 그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유럽 재정위기 시나리오가 궁금했다.

●유로존 위기가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먼저 유럽 위기의 진짜 원인을 알아야 한다. 국가부채가 많아서 위기가 발생한 게 아니다. 실물경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서다. 돈을 빌려 집을 샀는데 소득이 늘어난다면 문제되지 않는다. 경제를 성장시켜야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스 자산 값이 뚝 떨어졌다. 지금 투자해야 할까.

 "요즘 그리스·스페인 시중은행들에서 예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그만큼 대출할 돈이 줄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나라의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지 못하고 있다. 기업이 성장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미국이 재정절벽(Fiscal Cliff)을 피할 수 있을까.

 "11월 대선 이후 긴축과 성장을 놓고 정치권이 타협할 수도 있다. 반면 아무런 타협을 이루지 못하고 시간을 허비하는 게 가장 큰 리스크다."

◆프레데릭 너브랜드=4300억 달러(약 482조원) 정도 되는 HSBC 프라이빗뱅킹 부문 자산을 어디에 얼마나 투자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인물이다. 이런 그의 나이는 올해 37살이다. 로이터통신은 "HSBC 경영진이 그저 그런 프라이빗뱅킹 부문을 활성화하기 위해 그를 초고속 승진시켜 글로벌 책임자로 임명했다"고 전했다. 그는 스웨덴 출신이다. 명문 룬트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2005년까지 JP모건 프라이빗뱅킹 부문에서 일했다.

 ◆캐리트레이드=이자가 낮은 곳에서 차입 등으로 마련한 돈으로 고금리 지역의 자산을 매입하는 것.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 때문에 엔 자금이 호주와 터키 등으로 흘러들었다. 캐리트레이드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지만 역류는 한순간에 발생한다. 캐리 자금이 머물던 곳에 요동이 일어나는 이유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강남규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dism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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